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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어디든 가서

(늘 그렇게 불렀던 건 아니였지만)

누구는 특수부대라고, 또 다른 누구는 감옥이라고 부르던 첫 직장에는

만화에 나오는 예쁜 소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좀 나이 든 언니가 있었는데,

그 '특수훈련'이, 혹은 '수감생활'이 힘들 때 그 언니는

"누구 내 손 좀 잡아줘" 라는 특이한 부탁을 했었다.

 

내가 옆자리에 있을때 몇 번 잡아주기도 했던 그 손, 그 말이

아주 가끔 생각난다.

 

내 삶이 가난했을 때

(물리적인 가난함이라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그게 누가됐든

그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라도, 그 누군가의 치맛단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던 때.

그런 때.

 

 

특이하였다기보다, 절박하였는지도.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 없어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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