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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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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예전에는 책을 사면 늘 그랬던건 아니지만, 언제 샀는지, 또는 날씨가 어땠느니, 간혹 읽고 난 후의 간단한 느낌 같은 걸 썼는데,언젠가부터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게을러서) 2004년 2월, 나는 졸업을 했고, 한국을 떠났다. 그때의 기분들에 대해서는 일기장이나 수첩을 뒤진다면 (그때는 일기를 꽤나 많이 썼는데)좀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을테지만, (빨리 자야하는 게 아닐까, 하면서도 미적거리고 있는 일요일 한밤에는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략 '마음의 숲에 매일 비가 내렸어요(응?)' 이 정도? 주어진 평온한(?) 일상 속에서 잠시 떠나(ㅆ다가 돌아오)는 법을 알지 못하는, 배우려하는 않는, 어리석은 나는, 그리하여 훗날 내 발등을 찍고 싶다, 그때 왜 그랬을까, 역시 (일부의) 어른들의 말..
무엇을 위해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M님은, 퇴근 후 영어/컴퓨터를 배우고, 책을 읽고. 그러지 아니하면 삶이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생계유지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님을 증명하고, 삶이 덜 쓸쓸하기 위하여. 나는 책을 읽으면 되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고 싶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아, 출근해야 하는구나, 하지 않고 계속 누워서(!)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읽기는 그만두는게 되려 옳지 않은가?) 예배/기도, 과거 제자반의 숙제를 할 때 내가 회사와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에 묶이지 않은 몸이라면, 자유롭고 깊게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건 아마 뻔히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것이며, 비겁한 생각이고, 내가 지킬 필요가 있는 삶의 자리를 이..
성급한, 흰머리가 부쩍 늘고 가슴과 머리에 통증이 있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살면 그만인 것인지 덜컥 글쓰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덜컥 사표를 쓰고 싶은 나날들. 사표를 내지 못/안하는 건, 생계와 용기의 문제 너머,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말은 사실인가, 아닌가. 일상이 없어지고 무너지는 일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옳은가.